LIFE & FAITH
불평에서 감사로, 필리핀에서 만난 나의 하나님
불평의 얼룩을 지우고 감사의 선율을 채우다: 필리핀의 빗속에서 만난 하나님의 선하심
중등부 민하희 학생의 단기 선교 고백록
1. 예기치 못한 부르심: 닫힌 문 너머로 들려온 세밀한 음성
때로는 하나님의 계획이 인간이 설정한 물리적인 시간표를 성큼 앞서가기도 합니다. 저의 이번 필리핀 단기 선교 여정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본래 선교 대원 모집은 이미 마감된 상태였고, 제 일상에 선교라는 단어는 아직 선명한 무늬를 띠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집 종료’라는 상황적 제약 뒤에서 조용히,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주권적인 개입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 제가 필리핀 땅에 서 있는 모습을 두 번이나 보여주셨고, 학교 친구들의 입술을 빌려 선교에 대한 갈망을 끊임없이 일깨우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닌, 저를 향한 하나님의 세밀한 부르심이었습니다. 이미 닫힌 줄 알았던 선교의 문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열렸을 때, 저는 그것이 제 영혼의 지경을 넓히는 축복의 통로임을 직감했습니다. 문이 열린 기쁨도 잠시, 저는 곧이어 닥칠 치열한 영적·육체적 훈련의 과정으로 안내되었습니다.
2. 거룩한 군사로의 연단: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선교지로 떠나기 전, 우리는 ‘거룩한 군사’로 무장하는 혹독한 연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가장 큰 도전은 문화 사역으로 준비한 부채춤이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안무를 직접 구상하고 동선을 짜며 팀원들을 이끌어야 했던 책임감은 중등부 학생인 제게 결코 가벼운 무게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모두의 호흡이 어긋날 때마다 반복되는 훈련은 육체적 한계를 시험하게 했습니다.
동작이 맞지 않으면 1층에서 3층까지 오리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고, 20회가 넘는 버피 테스트를 감내하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 때,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지도자분들의 따뜻하지만 단호한 격려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고되게 연습하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야.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거야."
전도사님과 간사님들의 이 고백은 육체적 고통을 사명감으로 전환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동기가 될 때, 흐르는 땀방울은 기도가 되었고 힘겨운 안무는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으로 승화되었습니다. 눈물로 빚어낸 공연이 완성될 무렵, 저는 필리핀의 낯선 풍경을 향해 떨리는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3. 깨어진 기대와 직면한 현실: 익숙함이라는 특권을 내려놓다
선교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저는 막연한 안락함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필리핀을 다녀온 언니가 "물도 잘 나오고 크게 불편한 것이 없었다"고 말했기에, 현지 시설이 어느 정도 쾌적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마주한 현실은 언니의 경험담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수시로 물이 끊겨 이틀 동안 제대로 씻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고, 화장실 사용의 불편함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일주일의 일정 동안 빨래를 단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은 한국에서의 '당연한 편리함'을 철저히 무너뜨렸습니다. 인간의 계획과 기대가 무너진 그 자리에 비로소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적 훈련의 환경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의 불편함에 매몰되었던 저의 좁은 시선은, 나의 특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타인의 고통과 삶의 현장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더 넓은 지평으로 확장되었습니다.

4. 빗물 섞인 눈물로 심은 복음: 낮은 곳에서 깨달은 당연하지 않은 은혜
사역의 현장은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웠습니다. 거리 전도 중 마주한 필리핀의 속살은 가난과 열악함 그 자체였습니다. 가정 심방을 하며 만난 성도들의 집은 비가 오면 지붕에서 물이 새고, 기본적인 생활용품조차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정성껏 내어준, 그러나 제 입맛에는 전혀 맞지 않았던 음식을 마주했을 때 저는 내면의 갈등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 음식을 먹는 행위 또한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는 선교적 순종임을 깨달으며, 제가 누려온 모든 것이 결코 당연한 권리가 아닌 '은혜'였음을 뼈저리게 고백했습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아이타(Aeta) 산족 마을을 향하던 행군이었습니다. 현지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기 위해 그들의 손을 잡고 산을 올랐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옷과 신발은 진흙으로 무거워졌고 체력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예배 장소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주저 없이 우리가 먹으려 준비한 점심 도시락을 그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습니다. 굶주림과 피로 속에 억지 웃음을 지으며 춤을 추어야 했던 그 낮은 곳의 사역은, 내가 가진 것을 비워 타인을 채우는 복음의 원리를 몸소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5. 오픈 트럭 위의 찬양과 저녁 기도회: 불평의 회개, 감사의 항복
육체적 한계치에 도달한 순간, 하나님의 반전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량 배정 문제로 지붕도 없는 오픈 트럭에 몸을 실어야 했습니다.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배고픔과 서러움에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함께 탄 친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빗속에서 터져 나온 그 노래는 처량한 서러움을 순식간에 천상의 기쁨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영적 전환점은 그날 저녁 기도회에서 완전한 '항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주님의 선하심(God's Goodness)’ 찬양의 선율이 흐를 때, 가사 한 절 한 절이 제 영혼의 위선을 날카롭게 꾸짖었습니다.
"주님의 선하심이 날 인도하셨네 (All my life you have been so, so good)"
한국에서의 따뜻한 침대와 깨끗한 물, 풍족한 음식을 누릴 때는 단 한 번도 진심으로 고백하지 못했던 '주님의 선하심'이, 역설적으로 가장 춥고 배고픈 필리핀의 밤에 제 심장을 관통했습니다. "하희야, 너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살면서 왜 없는 것만 찾아 불평하니?"라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책망 앞에 저는 오열하며 무너졌습니다. 불평의 얼룩을 눈물로 씻어내자, 비로소 하나님의 선하심이 제 삶의 모든 순간을 덮고 있었다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6. 선교는 계속된다: 의사의 꿈에서 목회자의 소명으로
이번 단기 선교는 저의 비전을 송두리째 재정의하는 '거룩한 충돌'의 시간이었습니다. 본래 제 꿈은 사람의 몸을 고치는 의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뜨거웠던 기도의 시간 중 전도사님을 통해 들려주신 "세상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선교사나 목회자가 되라"는 권면은 제 영혼에 박힌 신성한 부르심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제 심장에 내려앉는 순간, 저는 의사라는 세속적 성공의 꿈을 내려놓고 목회자라는 소명의 길을 걷기로 결단했습니다.
비록 앞으로의 여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펼쳐질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제 저의 선교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제 일상이 곧 선교지임을 믿습니다. 학교와 가정에서 복음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삶을 살겠습니다. 처음에는 계획에 없던 여정이었으나, 하나님은 저를 부르셨고, 빗속에서 저를 빚으셨으며, 마침내 감사의 사람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7. 감사의 인사 (Acknowledgements)
불평의 자녀였던 저를 감사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부족한 저희를 주님의 군사로 무장시켜 주시고 끝까지 사랑으로 이끌어 주신 전도사님과 간사님, 저희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주시고 기도로 후원해 주신 부모님들, 그리고 든든한 기도의 버팀목이 되어주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필리핀의 빗속에서 만난 하나님의 선하심을 평생의 노래로 삼아 살아가겠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