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교육청, 우리 아이들 ‘교육 난민’ 만들려 하나요?
[칼럼] 왜 우리 아이들의 학교를 불안하게 만드는가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방송에서
세계로우남기독아카데미 비판
가장 큰 피해자, 아이들·학부모

최근 부산시교육청과 김석준 교육감의 세계로우남기독아카데미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석준 교육감은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왜 인가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을 모집했는가”, “왜 학교 형태로 운영했는가”라고 지적했고, 나아가 시정 요구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을 경우 시설 폐쇄와 고소·고발 가능성까지 언급하였습니다.
또 입학식에서 언급된 이승만 대통령, 반공, 자유민주주의, 한미동맹 등에 관한 발언에 대해서도 “세뇌”, “상상을 초월한다”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교육청이 법과 원칙을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입니다. 교육기관 역시 법적 기준과 절차를 존중해야 합니다. 학생의 안전과 학습권을 보호하는 일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공적 책임입니다.
그러나 이번 논쟁을 바라보며 많은 학부모들은 보다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과연 지금 이 논쟁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행정입니까.
정치입니까.
아니면 우리 아이들입니까.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로 가장 큰 불안과 상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입니다.
아이들은 이 논쟁의 당사자가 아닙니다.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꿈을 키워가며 평범한 학교생활을 이어가던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다니는 교육공동체가 ‘불법시설’이라 불리고,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것은 행정 절차의 문제가 아닙니다. 친구들과 공동체, 그리고 내일에 대한 불안의 문제입니다.
이 학교를 선택한 부모들 역시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학부모들은 오늘날 공교육만으로는 충분히 채워지기 어렵다고 느끼는 인성교육과 가치관 교육, 신앙교육에 대한 고민 끝에 이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공교육을 선택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여러 지원과 혜택을 포기하였고, 상당한 경제적 부담도 감수하였습니다. 그만큼 절박한 교육적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육의 다양성과 교육 소수자의 권리
부모에게는 자녀를 어떤 가치관과 교육철학 속에서 양육할 것인가를 결정할 책임과 권리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의 자유 역시 이러한 부모의 교육권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는 다양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중요한 가치로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공교육과 다른 교육철학을 선택한 학부모와 학생들 역시 교육의 소수자로 존중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양성이 특정 가치관에 대해서만 허용되고 다른 가치관에 대해서는 배제된다면, 진정한 다양성이라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폐쇄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해법입니다
세계로우남기독아카데미는 처음부터 법을 무시하거나 제도 밖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설립 초기부터 부산시교육청과 협의하며 인가를 목표로 준비해 왔고, 교육청이 제기하는 사항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물론 교육청은 인가를 약속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학교가 법을 무시해 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중요한 사실은 학교가 처음부터 제도권 안에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 협의를 이어왔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시민들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왜 관리와 조정의 길보다 폐쇄와 제재의 길이 먼저 논의되고 있는 것입니까.
인가의 문제는 단순한 행정 절차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가 여부에 따라 학생들의 교육 지속성과 학부모들의 안정감이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미인가 대안교육기관을 존치하며 관리하기보다 폐쇄와 제재의 방향이 강조되면서, 학부모들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행정 절차 자체가 아닙니다. 그 결과 아이들이 교육의 터전을 잃게 되는 상황입니다.
만약 학교가 폐쇄된다면 학생들은 새로운 교육 환경을 찾아야 하고, 지금까지 형성된 공동체 역시 큰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일부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가 하루아침에 교육의 터전을 잃고 교육난민과 같은 처지에 놓이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교육행정은 법 집행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교육 연속성을 보호하는 일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역사관을 심판하는 것이 교육행정의 역할입니까
또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교육청이 판단해야 할 영역의 경계입니다.
교육청이 검토해야 할 것은 학생 안전, 학습권 보장, 시설 기준, 교육과정의 적법성입니다. 그러나 특정 역사관이나 세계관 자체를 ‘세뇌’로 규정하기 시작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멀리서 들여다본 인상과 실제 교육 현장을 가까이서 들여다본 모습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치적 편향에 대한 우려 역시 단편적인 발언이나 인상만으로 판단하기보다 실제 교육 과정과 운영 전반을 직접 들여다볼 때, 더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학교는 이러한 소통과 설명의 기회를 언제든 열어두고 있습니다.
세계로우남기독아카데미는 기독교 배움터로서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보여준 기독교 정신과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적 의미를 존중합니다.
그렇다 해서 특정 인물을 우상화하거나 정치적 충성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교육 역시 일반 역사교육의 원칙에 따라 다양한 관점 속에서 이뤄져야 하며, 이곳 역시 그러한 원칙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민주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역사관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토론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만약 보수적 역사관은 ‘세뇌’로, 진보적 역사관은 ‘균형 잡힌 시민교육’으로 부르는 이중 기준이 작동한다면, 그것은 중립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이념적 개입이 될 수 있습니다.
교육청이 판단해야 할 것은 역사관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교육이 적법하고 책임 있게 이루어지고 있는가의 문제여야 합니다.
결론: 논쟁의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교육청에 질문할 수 있습니다.
왜 미인가 상태에서 운영했느냐는 질문 이전에, 왜 이러한 교육적 수요가 존재하는지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많은 학부모들이 공교육의 혜택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러한 선택을 하고 있는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육의 연속성을 지키는 방향보다 폐쇄와 제재가 먼저 논의되고 있는 것입니까?
학부모들은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을 무시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교육청과 협력하며 제도권 안에서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은 묻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교육적 선택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왜 교육의 다양성이 어떤 영역에서는 보호받고 어떤 영역에서는 배제되는 것입니까?
소수자 인권을 말하는 사회에서, 왜 교육 소수자들은 외면당해야 합니까?
국제 난민을 보호하자고 외치면서, 왜 우리의 아이들을 교육 난민으로 몰아내려 합니까?
왜 우리 아이들의 학교를 이렇게 불안하게 만드는 것입니까?
교육의 목적은 아이들을 보호하고 성장시키는 데 있습니다. 교육행정 역시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오늘 이 논쟁의 중심에는 정치도, 이념도, 행정도 아닌, 우리 아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부산교육청과 학교, 그리고 학부모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해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육은 결국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상렬
부산 세계로교회 부목사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